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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홍등(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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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홍등(1991)
  • 의약뉴스
  • 승인 2016.08.2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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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중국은 축첩의 시대였다.

중국의 자존심 장예모 감독과 10억 중국인의 영원한 연인 공리가 <붉은 수수밭>과 <국두>에 이어 세 번째로 콤비를 이뤄 만들어낸 <홍등>(원제: Raise the red lantern)은 그런 축첩의 세계를 밀도 있게 그려낸 수작이다.

첩을 무려 3명이나 둔 부호 진대감은 네 번째 부인으로 송련(공리)을 맞는다. 송련은 겨우 19살이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으레 그렇듯이 가계는 무너지고 계모는 첩살이를 강요한다. 대학을 중퇴한 송련은 커다란 갈색 가방을 하나 들고 진대감 댁으로 들어간다.

계절은 여름이다. 송련이 오자 첫째 둘째 셋째 부인은 호기심어린 눈길을 떼지 못한다. 여자 넷이 모였으니 집안 꼴이 어떻게 돌아갈지 대충 짐작해 볼 수 있겠다.

거기다 첩의 자리를 노리는 하녀까지 가세했으니 1명의 남자와 5명의 여자가 벌이는 질투와 음모와 시기는 가히 구중궁궐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비교될만하다.

아들을 두지 못한 둘째는 처음에는 송련에게 다정하게 굴고 가수 출신의 셋째가 아프다는 핑계로 대감을 불러 내는 등 여우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전갈의 독기를 뿜은 둘째의 야심이 드러난다.

셋째는 그 집의 주치의와 놀아난다.

첫째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있는데 공리가 그 아들과 잠시 한 눈을 파는 듯이 보이지만 진도는 더 나아가가지 못한다. 아버지의 여자 즉 계모와 아들이 놀아나는 설정은 상상으로 끝난다.

송련은 군대의 점호처럼 그날 저녁 침소에 드는 대감의 낙점을 받기 위해 다른 첩들과 함께 자신의 처소 앞에 다소곳이 서 있다. 이윽고 하인의 손에 홍등이 들리며 붉은 등이 켜지면 그날 어떤 첩이 주인을 모셔야 하는지 결정이 난다.

홍등이 자주 걸리면 여자는 힘이 세지고 그렇지 않으면 하인들도 무시한다.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 전통에 따라 그날 아침상의 반찬을 결정할 수 있는 권세도 생긴다.

홍등이 걸린 날에는 소리가 경쾌한 가락에 맞춰 발마사지를 받는 호사를 누리니 홍등은 첩들의 자존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다. 송련은 따분하다. 그런 가운데 둘째의 간계는 더욱 힘을 받는다. 인형에 송련이라고 쓰고 대바늘을 박아 하녀의 방에 두는가 하면 잔꾀를 부려 대감의 발길을 자신에게 돌린다. 

참다못한 송련은 거짓말로 임신을 가장한다.

하지만 속옷에서 핏자국을 발견한 하녀와 의원을 불러 확인한 둘째에 의해 가짜라는 것이 들통 난다. 홍등이 검은 천으로 봉등 당한 송련은 거짓이 발각된 것은 하녀 때문이라며 하녀의 방에 홍등이 걸려 있는 것을 트집 잡아 보복한다.

 

흰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이다.  곡선이 유려한 지붕 사이로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마당에도 소록소록 쌓인다. 하녀 주제에 감히 홍등을 달았으니 어린 하녀는 홍등이 잿더미가 될 때까지 마당에 꿇어 앉아 있다.

용서를 빌면 풀려나지만 독기를 품은 하녀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결국 쓰러진 하녀는 병원에 실려 가고 죽고 만다. 바로 그날이 송련의 20번째 생일이다. 대감이 출타하고 없는 사이 대취한 그녀는 마작 놀이 중에 알게 된 셋째와 주치의 사이를 떠벌이고 이를 들은 둘째는 두 사람의 간통현장을 덮친다.

두 명의 선조 여자가 자살 했다는 을씨년스러운 건물 옥상의 가건물로 끌려간 셋째는 하인들에 의해 죽고 이를 목격한 송련은 미치광이가 된다.

봄을 건너 띈 영화는 다시 여름을 맞는다. 진대감의 다섯 번째 첩이 들어온다. 두 명이 죽고 한 명이 미쳤는데도 바뀌는 것은 없다. 완고한 중국 전통의 봉건시대는 도도한 역사의 반란을 맞는 순간까지 이렇게 변화를 거부한다.

국가: 중국

감독: 장예모

출연: 공리,하새비

평점:

 

: 홍등의 추억을 쉽게 말하는 것은 어렵다. 대개의 남자들이 그곳에서 총각신세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붉은 등이 타오르던 홍등가의 기억은 그래서 뚜렷하면서도 아련하다. 그곳의 홍등과 이곳의 홍등은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르다. 그곳의 홍등은 불특정 다수와 소액의 돈이 오가는 반면 이곳의 홍등은 특정 1인과 거액의 돈을 매개로 한 성이 거래된다는 차이가 있다.

<홍등>이 벌어지는 공간은 엄청난 규모의 크기를 자랑하는 진대감 댁이다. 여러 채의 고래 등 같은 2층 집이 늘어서 있는데 그 크기는 대궐 정도로, 보는 내내 화면을 압도한다.

우리네 기와집처럼 처마의 선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둥근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검은 기와의 모양은 그 안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든다.

황제나 가능했을 법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첩들은 오로지 대감의 사랑을 받기 위해 치장하고 하루의 무료함을 달랜다.

자칫 따분한 내용이지만 붉은색의 홍등과 검은 바탕의 집과 하얀 눈의 시각적 효과와 함께 느린 화면을 타고 흘러나오는 셋째 부인의 경극 노래는 범상치 않은 영화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대학까지 다닌 배운 여자 송련도 여자의 질투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이것을 여자의 운명이라고 여긴다.

등을 밝히고 끄고 봉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이 집은 사람이나 고양이나 개나 쥐나 다 같다고 허탈해 하지만 그 뿐이다.

어린 하녀를 죽게 만들고 비록 취중이라고는 하지만 셋째의 비밀을 누설해 그 마저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철저하게 시대에 편승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다.

이처럼 <홍등>은 봉건주의를 타파하거나 그에 맞서는 영화라기보다는 당시의 상황을 충실하게 그린 것에 만족하고 평가는 오로지 관객에게만 맡겼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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