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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허클베리 핀의 모험> (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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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허클베리 핀의 모험> (1885)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07.0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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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악한 아이들은 도처에 있다. 이 아이들은 생김새만 아이일 뿐 어른 뺨치고도 남는다. 13세 정도라고 하면 아직 이마에 피도 덜 마른 상태 아닌가.

그런데 노는 꼴은 누가 아이이고 누가 어른인지 헛갈린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나오는 헉 핀만 해도 그렇다. 그런 정도가 아니다. 헉 핀은 아마도 모든 말썽꾸러기의 왕으로 추앙 받아 마땅하겠다.

입을 열면 거짓말이고 누군가를 속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남 몰래 슬쩍 훔치는 것에도 도가 텄다. 이쯤 되면 장난이 아니라 범죄다. 하지만 헉 핀에게 그것이 잘못이니 다음부터는 안해야 겠다거나 하고 난 뒤 심적 고통을 받는 일은 없다.

한 마디로 양심 같은 것은 카누를 강가에 숨겨 놓듯이 꽁꽁 숨겨 놓는 것이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표현처럼 도둑질은 잠시 빌려 오는 것이라는 그럴듯한 표현을 쓰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헉 핀에게 저주 대신 응원을 보내는 것은 그가 주인공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책이 다 끝날 때 까지 악행은 쭉 이어지지만 밉상이라기보다는 나중에는 찬사를 보내게 된다.

 

그의 모험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다음 모험이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책은 진실과 거짓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이어 헉 핀이 과부댁과 그 보다 어린 노처녀 왓츤이 있는 집의 양자로 간 사연이  이어진다. 과부댁은 아버지와는 달리 학교 공부를 시키고 예절을 가르친다.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한 훈육은 엄격하다.

격식은 따지고 음식을 먹기 전에는 뭐라고 중얼거려야 한다. 바로 식전 기도다. 식사 후에는 성경책을 들고 모세니 갈대 바구니 등의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모세는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이고 헉 핀은 죽은 사람에게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으니 성경 읽기는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하는 것 보다도 참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모세는 과부댁하고는 친척관계는커녕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그 사람에 관해서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배워야 한다.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펴면 하나도 겁나지 않는 지옥이야기를 꺼내니 어떤 때는 그 놈의 지옥이라는 곳을 가보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러면 왓츤 아줌마는 무척 화를 내고 헉 핀은 하루 빨리 이 생활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지옥은 아니더라도 아무데라도 좋으니 무작정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하프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빈둥거리는 천국만 아니라면 말이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기도에 넌덜머리를 낼 즈음 헉 핀은 속된 말로 너무 심심해 죽기 일보직전에 과부댁을 탈출한다. 구속 받고 교양 있는 문명인이 된다는 것은 딱 질색이기 때문이다.

헉 핀은 자유를 찾아 토켰는데 톰 소여와 함께 하지도 않고 갱단의 친구들도 하나도 없이 오로지 홀로 카누를 타고 떠난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도 따돌렸다.

미시시피 강가의 잭슨 섬이 자유를 만끽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로 지목됐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익사한 것처럼 흉계를 꾸며 놓았으니 누가 찾을 리도 없다.

나무 두 장으로 텐트를 만들어 놓았으니 비가와도 샐 리가 없고 잡은 메기를 아무렇게나 톱으로 배를 갈라 모닥불을 피워놓고 저녁을 해 먹고 느긋하게 누워 담배를 피고 있으니 기분이 아니 째질 수 없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모험 동반자 검둥이 노예 짐을 만난다. 짐은 왓츤 아줌마네 노예로 자신을 팔백달러를 받고 올리온스로 팔아 버리겠다는 말을 듣고 도망친 것이다. 그들은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더 안전한 장소를 찾아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남부로, 남부로 길고 긴 모험을 떠난다.

증기선에서는 살인사건을 목격하기도 하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도 하면서도 둘은 사이좋게 모험의 세계로 접어드는데 모험이니 만큼 그 길이 순탄할 리가 없다. 폭풍우를 만나 땟목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불어난 강물로 배가 한 척 기울어진 채로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배안에는 죽은 시체가 있지만 둘은 쓸 만 한 물건들을 챙기고 일리로이드 쪽으로 쭉 항해를 이어간다. 방울뱀에 물린 짐이 죽지 않고 문 뱀의 고기와 술을 엄청 먹고 나흘 밤낮을 꼬박 잠만 자고 일어나서 부은 발목이 나은 대목에서는 절로 안도의 한 숨이 새어 나온다.

여장을 하고 이사 온 집의 아줌마한테 마을의 소식을 듣는가 하면 시속 사마일의 속도로 여덟 시간 동안 강을 따라 내려가 온 세상에 불을 환히 밝힌 것 같은 세인트 루이스도 지난다.

밤 열시쯤이면 카누를 숨겨 놓고 작은 마을에 들어가 음식물을 사오거나 닭을 훔치고 해뜨기 전에 옥수수 밭에 몰래 들어가 수박이며 참외 호박 등을 빌려 오기도 한다. 이는 값을 마음만 있다면 훔치는 것이 아니고 빌려 오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난파선에 올라가서는 갱단의 일원인 살인자들에게 벌벌 떨기도 하고 천하의 사기꾼 공작과 왕을 만나 포복절도할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원수 집안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탈출하기도 하고 연극과 서커스를 구경하고 향수병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고독이 주는 자유를 마음껏 느낀다.

처음에는 공작이나 왕 흉내를 내는 그들을 따라 다니며 협조하기도 하나 나중에는 그들의 속여먹는 행태에 구역질이나 그들과 멀어지기로 작정한다.

헉 핀의 나쁜 행동은 이처럼 적당한 선에서 멈춘다는데 묘미가 있다. 영국 이야기나 세 딸을 남겨 놓고 죽은 거부의 재산에 얽힌 이야기는 단순한 유머 코드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다.

밥 먹듯이 늘어놓는 거짓말이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응원의 마음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늙은 노예 짐은 어린 헉 핀에게 귀신이야기 등 생활의 지혜를 이야기 해주고 헉 핀은 그를 추격자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

당시의 원칙은 노예를 보호 해 주는 것이 옳지 않고 양심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더 괴로움에 처할 것이라는 것을 마음이 아닌 몸이 먼저 알기에 헉 핀은 짐을 해방시켜 주기로 한다. (그 전에 왓츤 아줌마는 죽기 전에 짐을 해방시켜 준다는 유언을 한다. 그래서 헉 핀과 톰의 해방은 두 번째의 해방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내용을 모르니 짐은 여전히 도망친 노예 신세다.)

나중에 헉 핀과 짐은 톰 소여를 만난다. 그리고 갖은 기괴한 방법으로 이모 집에 갇힌 짐을 탈출 시킨다.

: 앞서 이야기 한데로 헉 핀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거짓말을 숨 쉬는 것보다 더 쉽게 한다. 열린 입 밖으로는 진실의 말은 새어 나오지 않는다. 사기꾼들의 경연장에서 단연 최고 수훈상을 수상할 만하다.

헉 핀 외에 그가 자신의 이름이라고 주절댄 것은 수 십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그 거짓말은 살인을 부르거나 누군가를 치명적으로 위험에 빠트릴 정도는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 그는 당연히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악당과의 대결에서 멋지게 승리한다. 물론 이 때도 거짓말이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열리지만.

거짓말로 위기를 돌파하고 그 거짓말로 모험을 즐기는 헉 핀은 시쳇말로 모범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 더구나 당시는 어떤 사회인가.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해도 겉으로는 도덕과 성경과 규범과 질서가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던 청교도 시절에 버금가던 때가 아니던가.

그러니 이 소설이 나왔을 때 기득권층의 불편함과 불쾌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한창 배워야 하고 배운 것을 좋은 일에 써야 할 어린 아이가 온갖 나쁜 짓에만 열을 올리고 어른들을 능욕하고 조롱하고 신을 업신여기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까.

어디 거짓말뿐인가. 도둑질도 예사롭게 한다. 노예를 숨겨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방시키기 위해 앞장선다. 그러니 이 소설을 좋게 보는 지배층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가는 인정받는다. 당시에 주장하기 힘들었던 시대의 악습에 잘 드는 메스를 들이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장도 놀랍도록 화려하다.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이 바로 오늘 나온 소설에 견줘도 결코 뒤에 있지 않다.

짜임새는 또 어떤가. 모험이라는 주제로 소설 형식을 빌려 써내려간 이 책은 초기의 무시를 만회하고도 남을 칭송을 받기에 이른다.

월리엄 포그너는 마크 트웨인에게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는 찬사를 보냈고 헤밍웨이는 '미국의 모든 문학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나왔다'고했으며 T.S 엘리엇은 '다른 작가에게 새로운 창작 방법을 발견해 낸 작가' 이며 W.L 펠프스는 '미국 정신의 실체를 알고 싶으면 마크 트웨인을 읽으라'고 헌사했다.

시종일관 넘치는 유머는 적었다가 써먹고 싶을 정도다. 애나 어른이나 심하게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수시로 나오는데 이때는 헉 핀의 폐가 걱정이 됐다. 애가 주인공이지만 어른들의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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