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판 검사를 위해 엑스선 골밀도측정기를 사용한 한의사에게 내려진 자격정지처분에 대해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특히 이번 판결은 그동안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관련된 대한한의사협회의 논리들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는 한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취소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지난 2005년 5월경부터 2007년 4월경까지 자신이 운영하던 한의원에서 38명을 상대로 1038번에 걸쳐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인 엑스선 골밀도측정기를 사용, 발뒤꿈치 등의 성장판 검사를 했다.
이후 A씨는 2009년 3월 검찰에 의해 한의사면허로 허가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항소에 상고까지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이에 복지부는 A씨에게 의료인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한 경우에 해당된다며 한의사면허 자격을 2개월 동안 정지한다는 처분을 내렸다.
A씨는 복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의 주장을 살펴보면 이제까지 한의협에서 주장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관련된 논리들과 판박이임을 알 수 있다.
A씨는 “이 사건 의료기기는 최대 동작부하의 총량이 10mA/분 이하로 신체에 거의 위해를 발생시키지 않으며, 측정결과를 판독하는데 전문적인 식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이 사건 기기의 사용은 한의학의 진단방법 중 망진(望診, 안색을 비롯해 눈, 입, 코, 귀, 혀 등을 살핌으로써 병세의 진전과 예후를 진단하는 방법)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서 방사선학 등에 관한 강의와 실습이 의과대학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이 사건 기기를 통해 얻어지는 정보는 한의학적 진단의 기초 자료가 되고 이에 대한 해석 능력을 바탕으로 침술이나 한약 처방 등 한방치료행위를 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의약 육성법이 ‘한의약이란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해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 및 한약사를 말한다’고 규정한 취지는 한의약의 외연을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에까지 확대해 한의약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국민에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논리도 등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같은 A씨의 주장을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기기를 사용해 성장판 검사를 한 것은 해부학적으로 뼈의 성장판 상태를 확인해 성장의 가능성이 있는지를 진단하기 위한 것으로 이에 관해 한의학적 진단 방법이 사용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서양의학과 한의학으로 나눠 있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이원성과 의료법상 의료인의 임무, 면허의 범위 등에 비춰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에 관한 규정인 구 의료법 제3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의료기관’에는 한방병원이나 한의사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구 의료법 제37조의 위임에 따라 제정된 구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칙 제10조 제1항, [별표 9]가 안전관리책임자를 둬야하는 의료기관에 한방병원이나 한의원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이를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또한 재판부는 “이 사건 기기의 주당 최대 동작부하 총량이 10mA/분 이하에 해당해 관련 규칙에서 정한 각종 의무가 면제된다고 하더라도, 그 의무의 면제 역시 종합병원, 병원, 치과병원 등 원래 안전관리책임 선임 의무 등이 부과돼 있는 의료기관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이를 근거로 한의사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한의약 육성법에 대해서도 “이 사건 기기를 사용해 성장판 검사를 하는 것이 한의약육성법에 규정된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에 포함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의협은 재판부의 올바른 판단을 존중한다”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협 김주현 기획이사겸대변인은 “이번 판결을 보면 한의사가 골밀도측정기를 사용해 성장판 검사를 하는 것은 무면허 진료행위이고, 면허정지 사유로 판단했다”며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 무분별한 불법진료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재판부의 올바른 판단으로 국민 건강이 향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