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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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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햄릿>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05.25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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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밖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살인이 벌어졌다. 귀에 독약을 붓고 자기 형을 죽였다.

그리고 형이 썼던 왕관을 자신의 머리 위에 얹었다. 형과 잠자리를 같이 하던 형수는 동생의 품에 안겼다. 막이 오르면 이런 사실이 급하지 않고 천천히 밝혀진다.

죽은 형과 바람난 엄마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 바로 햄릿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햄릿이 죽기 전에 미치지 않는다면 이상하다. 그가 수시로 독백을 하거나 혼자 배회하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이런 치명적인 내용을 알기 때문이다.

형의 왕관을 쓰고 덴마크 왕이 된 클로디어스는 막 안에서는 예상외로 인자하다. 마치 친자식 이상으로 햄릿을 위한다.

당연히 왕위 계승자는 햄릿이다. 불과 두어 달 전 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아내였던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는 그 때도 왕비였고 지금도 왕비다. 왕만 시동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왕비 역시 부군이 잔인하게 살해되고 그 살인의 주인공과 살을 섞으면서도 너무나 자상해 요부라고 부르기에는 턱없이 자질이 부족하다. 거트루트가 보이는 햄릿에 대한 모정은 햄릿의 아버지인 남편이 살해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이상이기 어렵다.

이런 클로디어스가 살해를 하고 이런 거트루드가 간음을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왕과 왕비는 덴마크 백성들에게는 성군은 아니더라도 폭군으로  인식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귀족이나 그 누구도 이들이 흉악한 남녀라고 대놓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오로지 햄릿에 의해 두 남녀는 천하의 악당으로 낙인찍히고 급기야 피를 부르는 죽음이 이어진다.

햄릿을 근대적 방식으로는 처음으로 비평한 것으로 알려진 A.C 브래들리는 <리어 왕>을 평하면서 “만일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한 작품만 빼고 그의 모든 희곡을 잃게 될 운명이라면 그를 가장 잘 알고 아끼는 사람들 대다수가 <리어 왕>을 간직하고자 할 것”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리어 왕> 대신 <햄릿>을 넣고 싶다.

<햄릿>이야말로 셰익스피어 문학의 정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남기고 싶다고 해서 남겨지는 것은 아닌 만큼 잡소리는 집어치우자. 아버지가 죽고 두 달 후에 아버지의 혼령이 나타나는 서두 부분은 다 아는 사실이다.

혼령을 통해 햄릿은 아버지가 살해됐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배우들을 동원해 연극을 하고 연극을 하는 동안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의 표정을 살핀다. 확실히 믿고 있지만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다.

연극을 통해 햄릿은 아버지의 살해범으로 삼촌이 틀림없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햄릿이 할 일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다. 복수는 당연히 살해다. 그는 기회를 엿보고 기회는 여러 번 찾아온다.

마침 클로디어스가 기도에 열중이다. 그는 내 죄 썩은 내가 하늘까지 찌른다고 통탄한다. 그리고 인류 최초로 형제를 죽인 저주를 받고 있다고 무릎을 꿇고 괴로워한다.

그 때 햄릿이 등장한다. 그가 삼촌이며 왕의 이 같은 참회 내용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것은 안다. 당연히 허리춤의 칼을 뽑는다. 하지만 이내 기도 중에(영혼을 씻고 있을 때) 그가 죽으면 놈이 천당을 간다고 뺀 칼을 도로 집어넣는다.

그는 이런 독백을 한다. “... 아서라 칼아, 더 끔찍한 상황을 만나자. 놈이 취해 잠자거나 광란하고 있을 때, 침대에서 상피 붙어 쾌락을 즐기고 있을 때, 경기 도중 욕하거나 구원받을 기미가 전혀 없는 행동을 하고 있을 바로 그 때, 다리를 걸자.” (민음사,1998, 최종철 옮김)

왕은 아직 햄릿의 이런 의도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오필리어라는 중신의 딸을 사랑해 그 사랑으로 인해 미쳤다는 것으로 짐작한다.

왕은 이제 광기 들린 햄릿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햄릿의 친구인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과 함께 영국으로 보낼 궁리를 한다. 영국 왕 에게는 편지를 보는 즉시 햄릿을 살해하라고 지시하지만 그 내용을 미리 본 햄릿이 편지 내용을 바꿔치기해 대신 친구들이 죽는다.

햄릿은 오필리어의 아버지인 재상 플로니어스를 얼떨결에 찔러 죽인다. 왕은 재상의 아들인 레어티즈와 햄릿의 결투를 꾸민다. 미리 칼에는 독약을 묻히고 햄릿이 죽지 않을 것을 대비해 독약까지 준비한다.

결론은 다 아는 것처럼 다 죽는다. 왕도 죽고 왕비도 죽고 레어티즈도 죽고 햄릿도 죽는다. 햄릿이 잠시 사랑 비슷한 것을 한 오필리아는 칼 대신 물에 의해 죽는다. 주인공들이 모두 죽었으니 비극중의 비극으로 막은 내린다.

: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햄릿에서도 숱한 기억하고 상황에 따라 써먹고 싶은 명문장들이 넘기는 책장마다 가득하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는 장면이다. 3막에서 왕과 왕비는 햄릿의 광증이 사랑하는 오필리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숨어서 햄릿의 행동을 관찰한다.

이때 햄릿이 등장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하고 독백을 내뱉는다.

비평가들은 주저하는 듯 한 햄릿의 이런 행동을 가리켜 우유부단하다거나 햄릿형 인간이라거나 하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햄릿이 아버지를 죽인 삼촌을 죽일 기회를 뒤로 미루는 것이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천성이 악하지 않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후천적으로 선함에 길들여진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햄릿은 누군가를 막 죽일 만큼 잔인하거나 악독한 인간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앞서 언급했지만 삼촌 역시 햄릿을 대하는 태도나 국정을 운영하는 스타일로 봐서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삼촌과 상피 붙은 엄마만 해도 그녀가 타고난 음란 형 여자는 아니다. 햄릿이 왕을 죽이고 그 동생과 결혼한 것을 추궁할 때 “내가 뭘 했기에 네가 감히 혓바닥을 이리도 무엄하게 놀리느냐”고 질책하는 장면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정조관념이 부족하거나 그것이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고 햄릿처럼 천성이 착해 남편이 죽은 마당에 자신을 원하는 시동생에게 안긴다는 것을 좋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햄릿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완벽하게 악한 인간은 없다. 악하지 않기 때문에 행동이 조심스럽고 그것을 옮길 때는 주저하기 마련이다. 한편, 햄릿에는 많은 음담패설이 나오고 남녀 간 성교를 연상하는 단어들이 제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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