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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이지 라이더(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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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이지 라이더(1969)
  • 의약뉴스
  • 승인 2016.05.2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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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 제복이 아닌 자유복을 입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자유다. 그러나 이 자유를 얻기 까지 실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불과 수 십 년 전의 일이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머리부터 길렀다. 귀를 덮었고 그것도 모자라 파머를 했다. 교복을 서랍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보고 땅을 내려 다 보았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달랐다.

자유의 냄새는 이렇게 마음이 아닌 외부로부터 왔다. 데니스 호퍼 감독의 <이지 라이더>(원제: Easy Rider)를 보는 내내 나는 자유를 생각했고 그리워했고 변함없는 애정을 느꼈다. 와이어트( 피터 폰다)와 빌리( 데니스 호퍼)는 자유다.

마약 밀매로 큰돈을 벌자 헌 오토바이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윤기 나는 할리데이비슨을 산다. 그리고 쉽게 올라탄다.

미국전역을 달릴 때 그들은 완벽한 자유다. 그런데 그 자유는 그들만의 자유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자유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범죄화 한다.

나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와 쉽게 충돌한다. 와이어트와 빌리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지만 그들은 긴 머리, 자유로운 복장 자체만으로도 나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불쾌해한다.

여객기 랜딩 소리만큼이나 굉음을 내는 폭발적인 엔진 음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벌 서 듯이 손을 위로 올려야만 잡을 수 있는 높은 핸들과 반짝이는 쇼바, 눈동자를 감춘 짙은 선그라스, 성조기를 그려 넣은 헬멧 ,너덜거리는 옷, 기름통속에 들어간 달러가 못마땅하다.

사람들이 못 마땅한 것과는 달리 그들은 그들이 못마땅한 것에 무관심하다. 흙먼지를 날리고 광야를 질주할 때 음악은 또 왜 그리 시끄러운가.

거칠게 태어난 것을 뽐내기라도 한 것처럼 차선을 하나씩 잡고 냅다 달리면 어느 새 저녁노을이 지고 모텔은 불을 밝힌다. 하지만 부릉대는 오토바이에서 아직 내리지 않은 그들을 보고 주인은 도로 문을 닫는다.

그들에게 내 줄 방은 없다. 욕설을 퍼붓고 와이어트와 빌리는 다시 광야로 나온다. 불을 피우고 야영을 한다. 모닥불 옆에서 그들은 마리화나를 빨고 마약을 한다. 약기운이 오르면 신비한 곳이라고 믿는 ‘마디 그라’로 가서 예쁜 여자를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다.

날이 밝으면 다시 달린다. 정원을 지키는 시골 사람들을 만나고 엄지 척 하면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또 다른 집시를 만난다. 설산이 있고 가파른 절벽이 나타나고 숲이 있고 강이 있고 기괴한 돌이 나타나고 황야를 지나고 사막을 거친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치 지리산처럼 첩첩산중의 능선이 아스라이 펼쳐지는 풍광이 장관을 이룬다. 스치는 그림만으로도 배부를 것 같은 그들은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어두우면 산에서 자고 날 새면 오토바이를 탄다.

아침에도 그랬듯이 거의 다왔다는 말 밖에는 얼마를 더 가야 목적지가 나오는지 그들도 모른다. 대충 일주일 정도 걸릴 거라는 것만이 주유하는 산천처럼 희미하다.

그 도시가 그 도시 같아서 떠나왔다는 떠돌이의 이야기, 작은 마을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를 만나고 연극을 하는 한 무리의 단원들도 만난다.

씨 뿌리고 자급자족을 하는 무슨 종교단체 같은 사람들의 철학적인 소리. 좋은 장소와 좋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곳이 바로 그들이 가는 곳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떠난다.

어느 도시에서 그들은 오토바이로 행진의 뒤를 따르다 감옥에 갇힌다. 허가 없이 행진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곳에서 둘은 술주정뱅이 조지(잭 니콜슨)를 만난다. 간수들은 두 사람을 천대하지만 지역 유지의 아들이며 이 지역의 공인인 변호사인 조지에게는 깍듯이 대한다.

 

조지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일행은 아름다운 미국을 꿈꾸는 그래서 단정치 못한 머리를 한 사람들을 율 브리너처럼 면도칼을 사용해서 막무가내로 밀어 버리고 싶어하는  이곳이 마음에 들리 없다.

밖으로 나온 조지는 병나발을 불면서 술을 먹고 D. H로렌스를 위해 건배를 하는 등 둘 못지않은 히피 기질을 보인다. 조지는 남부 최고의 매음굴인 ‘마디 그라’를 가려고 7번이나 시도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도 동행하고 싶어 한다.

세 사람은 도로에 선다. 엉덩이를 들고 한 손을 놓고 때로는 양손을 다 놓고 혹은 일어서서 두 손을 들고 도로를 질주한다.

이들 앞에 세상은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자신들 만의 것이다.( 달리는데 도로에 차가 없다. 바퀴 뒤로는 뽀얀 흙먼지가 날린다. 이런 길이라면 오토바이 혐오자 라도 한 번 타보고 싶은 질주본능이 꿈틀 거길 거다.)

다시 숲속. 와이어트는 조지에게 마리화나를 직접 말아준다. 피워봐. 술로도 문제가 많은데 마약까지 손댈 수 없다며 거절하던 조지는 아주 깊숙이 빨아 마시면 중독되지는 않지만 점차 빠져든다는 말을 듣고 쳐다보고 냄새 맡고 입맛을 다시고 종국에는 연기를 먹는다. ( 이 장면에서 배우들은 직접 마리화나를 피웠다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저녁을 보내면서 위성 이야기며 UFO 불빛이며 태양계에서 온 우리와 똑같은 외계인에 대해 설을 푼다. 그들은(인간보다) 엄청 진화해서 전쟁도 하지 않고 지도자고 없다고 한다.

개체들이 다 뛰어나 의식주 문제까지 알아서 처리한다는 것. 무정부주의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옆에는 오토바이, 앞에는 모닥불, 하늘에는 둥근달. 사방은 고요하니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접촉하는 외계인들이 금방이라도 저 쪽 숲에서 저벅 저벅 걸어 나올 것만 같다.

다시 아침이다.

나란히 서서 오줌을 갈긴 세 사람은 다시 달린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야와 도시는 없는 오직 자연뿐인 곳을 지나 드디어 뉴 올리온스에 도착한다. 식당에 들어간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원숭이 쳐다보듯 그들을 본다,

그리고 노골적인 혐오감. 옷차림 목걸이 장발 등 겉모습만 보고 문제아로 취급한다. 경찰은 금방이라도 총으로 제압할 것처럼 극도의 경계심을 보인다. 반면 여자들은 오토바이에 호감을 표시하면서 한 번 타보고 싶어 한다.

남자들과 경찰은 그들을 감옥에 쳐 넣고 싶어 안달하면서 감방이 생긴 건 저런 녀석들 때문이라며 히피, 고릴라, 동성애자이고 양키 같은 놈을 그냥 보내면 안 된다고 흥분한다. 위기를 느낀 일행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다시 광야로 나선다.

저녁이다. 조지와 빌리는 말한다. 다들 겁먹었다. 이류 호텔에도 우리는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가 그렇게 위협적인가.

네가 아니라 네 겉모습에 놀란 거다. 그래봤자 머리 좀 기른 거 뿐이다. 너한테서 자유를 본거지. 자유가 뭐가 어때서. 그래 그건 문제없어. 하지만 말과 행동에는 큰 차이가 있어. 그들은 자유로운 사람들을 겁내거든. 그럼 멈춰선 안 되겠군.

잡담을 하다 잠이 든다. 모닥불도 꺼지고 작은 연기만 난다.

어디서 사람들이 몰려와 방망이로 마구 팬다. 조지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 와이어트와 빌리는 거기 가서 딱 한잔만 하자고, 조지도 그러길 바랄 거라며 술집으로 향한다.

성모상과 십자가 그리고 화려한 불빛과 창녀들이 겹쳐진다. 음악과 술과 마약과 설교와 섹스가 적나라하다.

밤이 지나고 다시 낮이 왔다. 해냈다거나 실패했다거나 한 마디씩 하고 그들은 다시 한적한 도로로 나온다. 그 때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간다. 차 안의 두 남자는 저 들 좀 봐, 하면서 야릇한 눈빛을 교환한다. 머리 좀 자르지 그래.

그리고 장총을 꺼내 빌리에게 발사한다. 오토바이와 함께 빌리는 나동그라진다. 피 흘리면 죽는 빌리에게 와이어스는 복수를 다짐한다. 뒤를 좇는 그에게 가던 차는 돌아서 다시 총을 발사한다. 와이어스도 죽는다. 오프닝의 거친 음악과는 달리 엔딩 무비는 슬프고 처연하다.

국가: 미국

감독: 데니스 호퍼

출연: 피터 폴라, 데니스 호퍼, 잭 니콜슨

평점:

 

:돈 들어갈게 없다. 저예산영화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울림이 크다. 그것은 자유(Freedom)와 해방(Liberty)을 방해하는 자들에 맞선 히피들의 아주 단순한 이야기가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기껏 한다는 것이 머리를 좀 기르고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오토바이는 탄 것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외면 받고 따돌림 당하고 종국에는 개죽음 당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사람들은 자유를 외치지만 자유를 두려워한다. 지도층들이 싫어하는 것은 장발이나 더러운 옷이 아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것은 그들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법률의 범위 안에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인데 그 자유를 말하면 집단으로 덤벼든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자유는 형벌에 가깝다고 표현했는지 모른다. 헤겔은 인간의 역사는 자유의 신장사라고 말했다.

아직 인류는 각 개체가 뛰어난 우주인 보다는 열등한 존재인가 보다. 언젠가는 외부의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적극적으로 자기의 본성에 따라 목적을 실현하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누구나 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참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보호(Self -Protection)를 위해 필요 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회하고는 문명사회에서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정치권력의 행동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은 오늘날도 여전히 되새겨 봐야할 경구다.

스페판 울프가 부른 'Born to be Wild'의 노래는 결말처럼 슬프다. 거칠게 태어났으나 죽고 싶지 않다던 그들의 외침은 허무하게 끝났다. '이지 라이더'는 미국 남부의 속어로 창녀의 늙은 기둥서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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