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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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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맥베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05.0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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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은 타고나는가. 머슴으로 태어났다면 죽을 때까지 머슴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의문은 현재도 유효하며 아주 오래전에도 있어왔다. 셰익스피어가 활략하던 400년 전에도 왕은 대를 이어 왕 노릇을 해왔고 귀족도 그렇게 했다.

다시 말해 백성의 지배층은 금 수저로 태어나는 순간 죽을 때까지 금 수저를 물고 죽었다. 중국 진나라 때 머슴 출신의 진승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머슴인 내가 왕 노릇 한 번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후 중국은 숱한 반란과 반역으로 피비린내 나는 정권쟁탈전을 벌여왔다. 사실 머슴이 왕좌를 노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무모하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그러나 귀족이나 장군정도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늘 왕 곁에 있으면서 노릴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근 현대사에서 이런 예는 쉽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만 해도 부지기수다.

현실의 일이 작품에서 투영된 예도 많다. <맥베스>에서는 머슴이 아닌 장군 맥베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덩컨왕의 몸을 예리한 단도로 찔러 살해했다. 굳이 왕이 아니라 해도 장군의 직위만으로도 맥베스는 충분히 금수저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이미 영주의 작위도 얻었고 또 다른 영주의 지위도 획득했다. 덩컨왕도 적극적으로 신뢰하고 충분한 보상을 해주고 있다. 좌천될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장군은 친족이기 까지 한 왕을 죽였다. 죽인 이유는 표면상 간단하다. 세마녀의 예언 때문이다.

 

마녀는 말한다. 글래미스의 영주이며 코도의 영주이고 왕이 될 분이다. 이 말을 들은 맥베스는 동요한다. 글래미스의 영주는 현재 그렇다. 그런데 예언 이후 덩컨 왕은 대역죄로 처형된 코도의 영주 자리까지 준다.

마녀의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 이제 왕이 되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덩컨 왕은 맥베스의 야욕을 눈치채지 못하고 아들 멜컴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맥베스는 주저한다. 그 때 맥베스 부인이 구원병처럼 나타난다. 흔들리는 맥베스를 재촉한다. 왕이 될 분이라고 했던 마녀의 말을 상기시키면서 위대해지고 싶고 야심도 있으나 사악함이 없다고 나무란다.

맥베스 성으로 왕이 오는 오늘 저녁 해치워 종횡무진 지배권을 가지라고 부추긴다. 그래도 맥베스는 주저한다. 신하로 그 일을 적극 반대하거나 자신이 칼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자객을 막아야 하는 위치라는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왕은 폭군이 아니고 선정을 베푸는 깨끗하고 너무나 겸손하게 왕권을 행사한다. 맥베스의 치솟는 야심이 양심에 찔린다. 주저하는 남편에게 부인은 당신이 입고 있던 희망은 취했느냐, 잠잤느냐 당신은 비겁자냐고 몰아 부친다.

이 일을 감행하면 당신은 남자이고 더 큰 남자가 된다고 마녀와 같은 주문을 외운다. 실패할 것을 염려하면 술에 전 시종들이 뻗었을 때 당신과 내가 덩컨에게 못할 일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이것으로 흔들리는 마음은 정리됐다. 왕의 죽음은 시종에게 덮어씌우고 시종 역시 살해한다. 역모를 의심한 두 아들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도 도망갔다. 왕위 계승자가 사라졌으니 왕관은 자연스럽게 맥베스에게 돌아가고 그는 추대되어 옥좌에 오른다.

마녀의 예언은 실현됐다. 맥베스는 발 빠르게 후속조치를 취한다. 마녀의 예언을 같이 들었던 장군 뱅코를 자객을 시켜 살해하고 뱅코의 목을 벤 자객에서 너는 목 베기의 명수라고 칭찬한다. 그는 귀족의 부인과 아들을 역시 자객을 시켜 짐승처럼 도살한다.

피가 피를 부르는 연속된 살인으로 권자에 앉았으나 맥베스는 불안하다. 부인은 헛소리를 하다 죽었다. 영국으로 도망갔던 귀족과 왕자들은 지금까지 기독교권 국가에서 나온 적이 없는 명장과 합세해 스코틀랜드를 향해 군대를 조직한다.

이때 마녀가 다시 등장한다. 두려워 떠는 맥베스에게 잔인하고 대담하고 꿋꿋하라고 인간의 능력 따위는 우습게 여기라고 여자에서 태어나서 맥베스를 죽일 사람은 없다고 위로한다.

높은 자리에 앉은 맥베스는 천수를 누리다가 시간과 숙명을 따라 숨을 거두기를 바란다.

버남의 큰 수풀이 던시네인 언덕으로 공격해 오기 전 까지는 정복되지 않는다는 혼령의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하지는 그는 나무 가지를 잘라 앞세우고 진격해온 잉글랜드 군에게 목이 잘려 죽는다. 반역자는 사라졌고 새로운 왕은 대관식 준비에 공신들을 초대한다.

: 올해는 셰익스피어가 사망한지 40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달 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었다. 이 날이 셰익스피어가 타개한 날이라 그를 기념하기 위해 정했다고 한다. 스페인의 소설가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도 같은 날 사망했다고 한다.)

세상은 놀라운 작가에 대한 찬사를 하기에 바쁘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인류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한없이 고맙다. 더불어 위대한 작품을 읽으며 인간의 심리를 그토록 기가 막히게 파악한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한 번 더 아이처럼 불러보고 싶다.

오늘 소개한 <맥베스>만 해도 권력을 향한 인간의 거침없는 행보가 탁월한 심리묘사와 함께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마치 거친 황야에서 세 마녀에게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 맥베스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장면이 살아서 커다란 뱀처럼 꿈틀거린다.

예언으로부터 반란은 시작되지만 실제로 예언이전에도 맥베스에게는 왕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예언까지 들으니 행동은 거침없고 주춤거릴 때면 마녀보다 더 악랄한 부인의 종용이 맥베스의 칼끝을 피로 물들게 만들었다. <맥베스>에서는 많은 사람이 살해된다. 죽음은 비극이다. 주인공인 맥베스 역시 붉은 피를 흘리며 죽는다.

그의 인생도 죽음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영원히 덩컨왕의 충직한 신하로 살아있는 맥베스와 왕이 됐지만 죽은 맥베스 가운데 어떤 맥베스가 더 위대한 맥베스인지 독자들은 각자 판단하면 된다.

어떤 인간이 더 선하고 어떤 인간이 더 악한지 판단하는 것 역시 독자의 몫이다. 양심에 괴로워하고 주저하는 인간 맥베스와 사내가 되고 더 큰 사내가 되기 위해 선한 왕을 죽인 역적 맥베스와 어떤 맥베스가 더 인간적인지 역시 판단은 독자 몫이다.

정해진 운명에 따라 간 것인지 아니면 이를 부정하고 새로운 길을 갔는지는 맥베스만이 알 뿐이다.

사람들은 <맥베스>를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가장 스케일이 크며 잔인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독일의 노벨상 수상작가 토마스 만은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가장 격렬하고 가장 응축되고 아마 가장 엄청나다고 까지 할 만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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