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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보바리 부인>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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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보바리 부인> (1856)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02.2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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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게임이고 스코어가 있는 거라면 보바리는 엠마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야구로 치면 7회 콜드게임 패이고 축구로 치면 한 1:9 정도로 완패다. 워낙 실력 차가 크니 실수였다느니 연습이 부족했다느니 주전 선수의 부상 때문이거나 시차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인 경기라고나 할까. 1:1로 벌인 경기에서 엠마는 위너이고 보바리는 루저다.

그러나 귀스타프 플로베르가 쓴 인류 역사상 위대한 문화유산인 <보바리 부인> (원제: Madame Bovary) 를 단순히 보바리와 엠마의 사랑게임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게임이라고 할 수도 없다. 보바리는 엠마를 일방적으로 사랑했고 엠마는 보바리를 일방적으로 미워했다.

두 인생은 둘 다 불행했다. 살아 있을 때는 둘 다 행복했다. 엠마가 남편인 보바리 몰래 로돌프와 레옹과 밀회를 즐길 때 그녀는 하늘을 나는 천사였고 보바리가 그녀를 사랑할 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였다.

엠마가 이런 핑계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늦게 귀가하고 심지어 외박을 했을 때도 보바리는 엠마를 사랑했다. 오히려 못 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보바리의 엠마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더 깊어갔다.

엠마는 간통을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이 없었다. 두 남자 사이에서 육욕을 마음껏 불사르면서 그 때마다 보바리를 조롱했다. 엠마는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구름 속을 걸어 다녔다. 그녀는 보바리로 불행했고 정부로 행복했다.

 

살아 있을 때 행복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방대한 분량의 막바지에 이르면서 불행으로 치닫는다. 그러니 이 책은 남녀의 행복한 사랑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

아내의 불륜을 눈치 채지 못하고 (설령 눈치 챘다고 해도 모른 척 하거나 용서했을 것이다. 괴로워는 했겠지만 소심한 보바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몸 상하니 적당히 하라고 조언 정도나 했을까.)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부었던 보바리.

그런 보바리를 놔두고 정부와 사랑 놀음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던 엠마. 그러나 독자들은 보바리를 응원하거나 엠마를 저주하지 않는다.

보바리는 보바리의 인생이 있고 엠마는 엠마의 인생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늙은 과부와 결혼해 한 차례 상처한 아픔이 있던 보바리는 엠마의 아버지가 다친 것을 치료해준 인연으로 엠마와 결혼한다.

결혼 후 두 사람에게는 귀여운 딸도 태어났다. 의사 남편을 둔 엠마는 집을 떠난다는 설레임 때문에 잠시 결혼의 즐거움에 빠져 보기도 하지만 곧 내가 어쩌자고 결혼했나 하는 후회감이 밀려든다.

단조로운 시골생활은 엠마의 야망을 담기에 너무 부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후작의 초대를 받아 밤새 춤을 추면서 그녀는 다른 남자의 품을 그리워하는 작부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엠마가 찾던 이 세상 어딘가에 따로 있을 행복이 무엇인지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엠마의 몸은 보바리 한 사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서 너 명의 남자가 있어야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엠마는 무도회가 열렸던 그 날을 그리워하면서 어제 같은 오늘에 짜증을 낸다.

보바리는 엠마에게 무슨 중병이 걸린 것처럼 안쓰러워 백약을 처방하지만 엠마의 진짜 병을 모르는 바보 천치다. 부부는 좀 더 큰 곳으로 이사를 가고 그곳에서 엠마의 삶은 새롭게 시작된다.

로돌프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엠마에게 접근한다. 엠마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찍은 로돌프에게 그녀는 나도 너를 찍었다고 덤벼든다. 서로 찍고 찍혔으니 안 넘어가는 것이 이상하다.

밤새도록 작전을 짤 필요도, 햇빛이 내리쬐는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에서 꽃을 사지 않고도 엠마는 로돌프의 수중에 떨어졌다. 정조가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쳐졌다.

바람난 여자의 심리를 아는 로돌프는 보바리와는 전혀 다른 사랑의 기교를 선보이면서 엠마가 얌전히 그의 발아래에 무릎 꿇게 만들었다. 엠마는 로돌프의 정력에 흠뻑 빠져 들고 육욕의 황홀한 세계에서 허우적거린다. 남편이 잠이 들면 잠옷 바람의 엠마는 숨죽이고 미소지으며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진찰실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로돌프가 무관심해지자 육체의 쾌락으로 굴욕을 참았던 엠마는 간통의 대가로 벌이 찾아오기 전에 다른 방법을 찾는다. 둘이 도망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날 로돌프가 홀로 도망가면서 어긋난다.

엠마는 절망 속에서 몸부림친다. 엠마는 로돌프와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보바리 때문이라는 듯이 툭하면 그에게 화를 낸다. 보바리는 의사답게 엠마의 변화가 그 전에 있었던 우울증이 재발한 것으로 처방을 내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하지만 엠마의 병은 속세의 병이 아니니 처방이 틀렸고 틀린 처방은 엠마를 더욱 절망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녀가 바랐던 처방은 3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로돌프가 기다리고 있는 노르망디 해변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런 엠마를 보는 보바리는 차라리 자신이 아팠으면 하는 마음으로 엠마에게 더욱 정성을 쏟는다. 엠마는 다른 간통하는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남편이 안절부절 못할수록 그에 비례해 더욱 멀어지고 어떻게 하면 벗어나서 다른 사랑을 찾아야 할 지 갈구하게 된다.

더 이상 간통할 대상이 없어진 외로움 때문에 엠마는 긴 밤을 홀로 새면서 영혼이 빠져나간 몸을 덥혀줄 새로운 애인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그 외로움의 자리에 신앙심 대신 젊은 레옹이 끼어든다. 단비를 맞은 꽃이 활짝 피어나 듯 엠마도 다시 살아났다. 그녀는 레옹을 만나기 위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집을 빠져 나가 시내 호텔에서 대낮부터 질펀한 사랑에 뼈마디가 녹아내렸다.

레옹을 만나러 갈 때 그녀의 가슴은 부풀어 올랐고 그녀의 입술은 시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쓴 검은 베일 속에서 쾌락에 떨고 있었다.

엠마는 레옹의 젊음에 반미치광이가 돼 집착하게 되고 레옹도 의사를 남편으로 둔 상류부인, 그러니까 진짜 정부에 빠져 들었다. 세련된 말투, 단정하게 차려 입은 옷 매무새, 잠든 비둘기 같은 자태. 엠마는 모든 연애 소설과 연극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며 모든 시집 속에 나오는 막연한 그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헤어질 때 아쉬어했던 레옹은 우리 아기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감시하려 드는 엠마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레옹을 잡아두기 위해 그녀는 몸치장에 더욱 신경을 쓴다. 빚은 늘고 엠마는 노련한 일수꾼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거짓말을 일삼던 엠마는 파산하고 집달리의 소환장, 인지가 붙은 서류가 보바리에게 배달됐다. 엠마는 마지막 끈을 잡기 위해 옛 애인 로돌프를 찾아가지만 돌아온 것은 돈 대신 배신이었다. 그녀가 택할 수 있는 것은 파란 병 속에 든 하얀 가루를 삼키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 나갔다. 지상의 모든 영화를 갈망하던 두 눈, 따뜻한 미풍과 사랑의 냄새를 그토록 좋아했던 콧구멍, 거짓을 말하기 위해 벌어지고 오만에 전율하며 음란한 쾌락에 울부 짓던 입. 기분 좋게 감촉을 느끼던 두 손.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토록 빨리 달렸건만 이제는 이미 걸어 다니지도 못하는 발바닥.”

엠마가 죽자 엠마 없는 삶을 하루도 생각하지 못했던 보바리는 장례식을 마치자 따라 죽는다. 죽기 전 보바리는 차라리 모르는 것이 좋았을 무더기의 연서를 확인하고 레옹의 결혼소식을 들으며 엠마의 부정에 부들부들 몸을 떤다.

보바리가 환자를 치료하러 왕진가방을 들고 나가는 대신 엠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정해진 순서였다. 죽는 순간에도 그녀의 것이었던 로돌프를 만나 자기가 이 사나이가 되고 싶었던 보바리의 순애보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 사람들은 이 소설을 현대 소설을 거론하는데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으로 인식한다.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을 4면 반 만에 완성했다. 출간 3개월 전 공중도덕 및 종교적 미풍양속을 헤쳤다는 이유로 작가와 출판사가 피소 됐으나 한 변호사의 “당시 지방에서 빈번하게 실시되고 있는 그릇된 교육 이야기라는 변론”으로 세상에 빚을 보게 됐다.

이 책을 번역한 (민음사, 2000) 김화영 교수는 최근 펴낸 < 김화영의 번역수첩>( 문학동네, 2015)에서 꼬박 3년에 걸쳐 번역한 사실을 알리면서 “현대 소설사에서 비켜 갈 수 없는 교차로” 라고 이 작품을 높게 평가했다.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하는 약제사 오메의 활약이 눈부시다. 말 그대로 약방의 감초노릇을 톡톡히 하는데 의사가 파멸하는 것과는 달리 약사는 훈장까지 타면서 승승장구한다. 금사자 여관 앞에서 약국을 하는 오메의 인생 처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가 구태여 교회를 찾아가 은접시에 입을 맞추거나 우리보다 잘사는 사기꾼들을 내 주머니 돈으로 먹여 살릴 필요는 없다거나 신이 우리들의 요구를 다 알고 있는데 기도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신앙을 조롱할 때면 엠마로 타오르던 불길이 삭고 잠시 차분해 진다.

나는 요약본쯤으로 짐작되는 이 책을 고등학교 때 읽었다. 두꺼운 솜이불 속에서 나는 도대체 엠마는 어떻게 생겨먹은 여자일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잠 못 이루는 밤을 여러날 지새운 적이 있다.

그 뒤로 한 번 더 읽었고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그 때 잠 못 잔 것은 낮잠을 많이 자서가 아니라 엠마라는 캐릭터가 세상의 모든 남성의 가슴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었다.

오, 엠마. 세상 어딘가에 있을 제 2의 엠마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남자들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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