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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주정뱅이 천사(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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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주정뱅이 천사(1948)
  • 의약뉴스
  • 승인 2016.02.1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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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좋아하는 중년의 의사가 있고 속마음은 착하나 겉멋에 야쿠자 생활을 하는 젊은이가 있다. 두 사람은 직업이 판이하지만 성격이 불같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서로 지지 않으려는 오기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주정뱅이 천사>(원제: 醉いどれ天使)에서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의사 대 날건달의 세계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의사 사나다( 시무라 다카시)는 지금 세상의 눈으로 보면 숙맥 의사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벌이보다는 환자치료가 우선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나다에게 모기가 지독하게 덤비는 어느 더운 여름날 문에 손이 끼었다면서 마츠나가( 미후네 도시로)가 찾아온다.

치료하는 의사나 치료받는 환자나 거친 입담과 태도가 아주 볼만하다. 의사는 너같이 무위도식 하는 놈들에게는 되도록 치료비를 비싸게 받는다고 외치면서 핀센으로 상처를 긁어대자 아픔을 참지 못하는 환자는 이봐, 마취제나 뭐 그런 거 없냐고 맞고함 친다.

 

그러면 의사는 입으로 숨을 잔뜩 들이 킨 다음 콧바람을 세게 날리며 흥, 너 같은 불효한 놈들에게 쓸 주사 같은 것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흥! 이라는 외마디 소리가 참 많이 나온다. 의사가 가장 많이 내뱉지만 건달도 수시로 흥! 하고 시니컬하게 응수한다.)

질 새라 마츠나가가 강하게 째려보면서 기침이 좀체 낫지 않으니 감기약이나 좀 줘. 하고 대꾸한다. 사나다는 너희들처럼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놈들은 결핵균 감염 확률이 높으니 엑스레이를 찍어보라고 권유한다.

참다못한 마츠나가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확 던지면서 내가 가만있으니까 마음대로 지껄여, 이래서 의사 놈들이 싫어. 흥, 뭐든지 부풀려 말해서 돈 버는데 혈안이 됐다니까. 하고 쏘아 붙인다.

그러면서 마른기침을 계속한다. 그대로 놔두면 얼마 못가. 의사가 말하자 건달은 거짓말 하면 가만 안둔다고 벌떡 일어서서 괜찮은 오른손으로 멱살을 잡고 쓰러뜨린다. 난 거짓말 안하다고 이놈아, 밑에 깔린 의사가 발버둥 치고 간호사 비슷한 여자가 들어오면서 상황은 정리된다.

건달이 나가자 일어난 의사는 저런 짐승 같은 놈일수록 결핵을 우습게 안다고 혀를 찬다. 병원 주변은 시궁창이다. 고인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뭣도 모르는 아이들은 그런 물에서 놀이를 한다.

거리에 나선 의사에게 술집주인이 수작을 부린다. 좋은 물건 들어왔어요. 흥, 댁의 술은 알코올보다는 석유에 가까워하고 술독에 빠져 사는 술 전문가다운 평을 한다. 의사는 술집으로 들어가 마츠나가의 행방을 묻는다.

막 자다 일어난 것처럼 덥수룩한 머리에 중절모를 쓰고 커다란 뿔테 안경 낀 얼굴은 때가 꾀죄죄한데 면도하지 않아 털 복숭이다.

의사는 밖으로 나와 댄스홀로 들어간다. 춤추는 젊은 남녀와 음악이 소란스럽다. 한 구석에 단정한 머리, 말쑥한 양복에 넥타이를 맨 건달이 손에 담배를 물고 있다. 왠지 시무룩해 보인다.

건달의 여자는 말없이 앉아 있는 마츠나가가 밉다. 오늘 따라 왠 청승인가, 얌전하게 있는 게 어색하다고 몰아세운다. 더워서 그래, 하면서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킨다.

그의 똘마니들이 의사가 찾아온 것을 알린다. 둘은 술을 마신다. 건달은 화해하는 셈치고 좋은 술을 건네고 의사는 너 같은 난폭한 환자는 처음 본다며 술잔을 잡는다.

둘은 술을 먹으며 티격태격하지만 왠지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이 있음을 안다. 의사는 건달이 술을 끊고 치료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고 그런 의사의 마음을 안 건달은 한편으로는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폐에 구멍이 났다는 말에도 건달은 너 같은 돌팔이가 하는 말 누구 믿느냐며 쉽게 술을 끓지 못한다.

길을 걸으면 장사치들이 그에게 인사를 하고 꽃을 집어 들고 그냥가도 따라와서 돈 달라는 대신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다. 건달의 세계에 깊숙이 빠진 마츠나가는 의사의 말을 듣는 대신 야쿠자 생활을 버리지 못 한다

술을 먹다 둘은 또 한바탕 시거리가 붙는다. 너 같은 놈 어찌돼도 상관없지만 난 니 폐에 둥지를 튼 결핵균에 관심이 있다는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도 무섭게 마츠나가는 의사의 멱살을 잡아끌고 나가 밖에 내동댕이친다.

병원에 온 의사는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면서 이 세상에 환자가 없어지면 제일 곤란한 게 의사라면서도 의사는 환자 고치는 일만 맨 날 생각한다고 간호사 겸 애인에게 넋두리를 한다.

그가 한 번 진찰한 환자는 자기 몸 보다 더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싶어 하니 적당히 했으면 큰 병원의 원장정도는 벌써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신세한탄을 하면서도 사나다는 젊은 시절 자신의 천성을 회상하고 그러면서 마츠나가를 다시 걱정한다.

내 젊은 날을 보는 것 같다는 의사는 그를 불쌍히 여기면서 결핵보다도 그의 인생이 뿌리 채 망가지고 있는 것이 더 심란하다. 마츠나가가 자신 앞에서는 강한 척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지만 가슴속은 바람이 휭 하게 불 정도로 비어 있을 거라고 안쓰러워한다.

이런 와중에 건달이 형님으로 부르는 자의 출옥일이 다가오고 있다. 그는 의사의 간호사 애인의 전 애인으로 그녀에게 나쁜 병까지 옮겼고 여전히 그녀의 남편을 자처하고 있어 그가 출소하면 의사도 골치 아파 진다.

어느 날 시궁창 가에서 같은 곡만 연주하던 기타소리에 다른 곡이 실려 나온다. 간호사는 그가 나온 것을 직감하고 겁에 질린다. 마츠나가도 그의 출소로 힘을 잃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술을 먹고 여자와 놀고 담배를 입에 달고 산다.

온 몸에 열이 있고 의사가 스스로 알 만한 증상이 나타났을 정도로 심각해진 상태에서도 방탕한 생활을 벗지 못한다.

의사는 말한다. 난 니가 병을 무서워하는 것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것을 부끄러워 하는 네 근성이 우습기 때문이다. 네 놈은 그걸 용기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너희들 같은 겁쟁이도 없다고 일갈한다. 너 같은 녀석보다 방금 전에 나간 저 작은 소녀 쪽이 더 강한 근성을 갔고 있어. 저 앤 병과 직면하면서도 의젓하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시궁창에도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마츠나가의 뒷모습을 보면서 의사는 혼잣말처럼 중얼 거린다. 저 놈, 열이 있을 텐데 우산도 안 쓰고 간다. 바보자식. 건달의 허세는 업혀서 병원와서도 마찬가지다.

네가 와달라고 부탁해서 온 거다. 야쿠자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고 헛소리를 한다. (그 대단한 야쿠자). 하지만 마츠가나는 출소한 야쿠자 형님의 손에 죽는다. 목숨 같은 건 대수롭지 않아, 언젠가는 죽겠지. 하던 젊은 야꾸자는 의사가 따귀까지 때리면서까지 치료하려던 속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허망하게 일생을 마친다.

쏟아내는 붉은 피를 보면서 관객들은 그가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마츠가나의 젊음 때문이 아니라 의사의 헌신이 헛될까봐 걱정해서다.

국가: 일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출연: 사무라 다카시, 미후네 도시로
평점:

 

팁: 치료하고 싶어 하는 의사와 거부하는 환자의 갈등이 아주 제대로다. 건달 환자는 죽었지만 대신 젊은 여학생은 살아났다.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적극적인 치료를 하고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한 결과다.

팥죽을 걸고 내기를 걸었던 여학생은 자신의 폐가 깨끗해진 엑스레이 사진을 의사에게 보여주면서 팔짱을 끼고 인파속으로 사라진다.

지저분한 천사라고 건달이 욕했지만 부탁도 안 했는데 걱정해 주니 스스로 말하는 것이 그렇지만 (의사인) 난 천사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어. (누가 아니래. 정말 그는 술 먹는 천사다.)

마츠가나가 죽지 않고 살아서 영화가 끝나면 재미없다. 출소한 야쿠자 형님에게 애인까지 뺏기고 중앙에서 전달사항이 내려왔다는 이유로 관할지역까지 넘겨주고 자신의 지역이었던 곳에서 꽃 한 송이 거저 집어 들지 못하는 신세가 됐으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죽는 길 밖에 없다.

의사가 한 숱한 명언들이 있지만 이런 말을 마츠가나처럼 살고 있는 젊은이가 오늘날에도 있다면 들려주고 싶다.

니 주변에는 썩은 구더기가 우글대고 균이 찬 놈들이 가득해. 그 놈들과 확실히 관계를 끊지 않는 한 넌 가망 없어. 너의 폐는 이 웅덩이 같은 거야.

댄스홀에서 춤추면서 노래 부르는 장면, 마츠가나와 출소한 형님이 거울을 사이에 두고 혹은 흰 페인트가 쏟아진 거리에서 미끄러지면서 싸우는 장면 등은 대단히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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