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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스인 조르바>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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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스인 조르바> (1946)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02.0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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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가 크게 흔들린 것은 2008년이다. 당시 그리스는 진도 8 이상의 대지진이 발생한 것처럼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신들의 나라' 그리스가 뉴스거리가 된 것은 자랑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들려오는 이야기는 IMF 구제금융( 우리도 겪어봐서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안다.) 신청이나 디폴트(채무 불이행)등 온통 흉흉한 것뿐이었다.

실업률은 30%에 육박하고 자살률은 급증하고 빈부격차는 사상최대를 갈아치웠다. 유로존으로 묶여 있던 나라들은 덩달아 흔들렸고 신을 팔던지 섬이라도 넘기라고 아우성을 쳤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연일 대책 회의를 열었다. 유럽이 흔들리니 세계가 걱정했고 그리스는 '악의 축'으로 매도됐다. 나는 그리스 사태의 온갖 처방이 백약무효인 상황을 지켜보면서 '조르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색다른 상상을 해봤다.

" 흥, 조국 그리스가 개판 오분 전 이라고. 망할 라면 얼른 망하라지. 신들의 나라는 악마에게나 넘겨주고."

아니면 "두목, 말로는 못해. 내 춤으로 보여드리지." 하면서 맨발로 모래바닥을 차면서 하늘로 솟구쳐 올라 빙빙 돌고 떨어졌다가 다시 공중제비를 돌면서 고래고래 욕지기를 해댔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아니면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맙시다. 두목, 먹고 마시고 계집질이나 하면서 인생을 즐기자고요. 그것이 사는 목적 아닙니까? 안 그래요?" 이렇게 반문 하면서 산투르를 꺼내 들고 미친 듯이 줄을 튕겼을지도 모른다.

조르바는 그런 인물이다. 이런 사람과 내가 평생 죽고 못사는 친구가 된 것은 다른 사람에게서는 느끼는 못하는 무언가 범접하기 어려운 신과 비슷한 위치에 오른 망나니 기질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조르바를 처음 만난 곳은 리비아에 면한 크레타 섬으로 가기 위해 막 쿠바를 떠나기 직전 이었다. 덩치는 크고 잿빛수염을 했으며 몸에 군데군데 진흙이 묻어 있던 맨발 의 전형적인 부두 노동자 차림이었다.

그는 늙수그레한 65살이었고 나는 팔팔한 35살이었고 그는 노동자였고 나는 광산을 캐는 자본가였다. 나이와 신분의 차이를 두 사람이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책을 읽으면서 내내 신기했다.

책벌레 족속들과 거리가 먼 노동자의 단순한 삶을 살아 보기로 작정했다고는 하지만 먹물 근성은 천성과 같은 것이어서 쉽게 바뀔 수 없는 내가 노가다 중의 상 노가다 일을 하는 조르바와 궁합이 맞는 것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탁월한 문필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일에 시답지 않은 냉소를 보내고 작은 일에도 불같이 성을 내는 것이 조르바였다. 흙덩이를 가지고 그릇을 만드는데 장애가 된다고 왼손 집게손가락을 예리한 손도끼로 잘라내고도 후회하지 않는 야만인.

하지만 살아있는 가슴을 가졌고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낼 수 있어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 그게 또한 조르바 였으니 나 아니라 누구라고 조르바의 넓은 품안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 대나 침을 탁 뱉고 욕을 입에 달고 살며 붓다에게는 조금 호의적이지만 하느님에게는 가차 없이 주먹을 날리고 거기다 과부와 잠자리를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게 하는 신기한 재주를 가진 늙은 남자 조르바.

주름진 입을 벌리고 버터 바른 빵에 꿀을 발라먹는 모습, 털투성이 콧구멍으로 파란 연기를 내 뿜으며 담배를 피는 모습, 피보다 진한 포도주를 벌꺽벌꺽 들이키는 모습, 몇 푼 안 되는 검은 실 한 타래를 주고 참한 과부와 잠자리를 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행동거지를 조심 합시다' 고 능청을 떠는 조르바.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내 심약한 손과 창백한 얼굴, 피투성이가 되어 진창을 굴러보지 못한 내 인생이 어찌 부끄럽지 않을까.

그가 특히 조롱하는 대상은 하느님이다. 사기치고 훔치고 살인을 하니 자유가 왔다고 외치면서 우리 같은 것들에게 천벌을 내리지 않는 하느님이 참 웃기지 않을 수 없다고 대놓고 욕보인다.

그런가 하면 내가 사람을 믿는다면 하느님도 믿고 악마도 믿겠다고 허풍을 떤다. 모든 것을 가진 하느님인데도 굶어 죽는 자들이 죽으면서까지 감사하다고 외치는 것은 미친짓이라고 일갈한다.

주교나 수도승도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 수도승은 돼지새끼, 거짓말쟁이, 노새새끼로 불리고 주교에게는 저 엄숙하고 고상한 육체 속에 영혼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가 고 되묻는다.

그 다음은 여자다. 그가 여자를 지칭할 때는 늙든 젊든 예쁘든 밉든 한마디로 암컷이다. 말을 알아듣는 짐승 혹은 건강에 해롭고 토라지기 잘하는 물건으로 비유한다. 천 번을 깔려도 처녀로 다시 일어난다고 비웃으면서도 여자와 잠자리를 못해 안달하는 인간.

여자들은 다 화냥년 이라는 것.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인데 여자는 자유를 원치 않는다,그 런데도 여자가 인간이냐고 소리지른다.

같은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를 천하게 여기는 것도 조르바의 태도다. 내가 인부들에게 너그럽게 대할 것을 요구하자 친절하게 대하면 눈이라고 뽑아가고 평등, 권리 같은 것을 말하면 당신 권리까지 빼앗아간다고 경고한다.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조롱의 대상이지만 그래도 나를 조금 위하는 것은 내가 윽박지르지 않고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조르바에게는 모든 것이 자유다. 국가도 그 앞에서는 껌딱지에 불과하다. 저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죽자 그리스 정교회가 그의 주검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좀스런 종교를 탓할 일만은 아니다.

: 조르바는 나와 헤어진 뒤 처음 3년간은 아토스 산에서 그 6개월 뒤에는 루마니아에서 5년 후에는 시베리아에서 아직 살아있다고 엽서를 보내왔다.

독일 대공황으로 마르크화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던 여행 중인 베를린에서도 소식을 받았다. 나는 이 위대한 인간 조르바의 말 절규 몸짓 눈물 춤을 보존하기 위해 연대기를 막 완성했다.

나 같은 사람은 천 년을 살아야 한다고 떠벌였던 조르바는 그날 죽었다. 그는 산투르를 내게 유물로 남겼다. 종부성사 같은 걸 하기 위해 신부 같은게 오면 저주나 내리고 꺼지라는 유언도 남겼다.

신을 통해 구원을 얻는게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는 조르바다운 마지막 주문이니 눈물겹다.

사족: 조르바는 지금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보면 ‘돌 아이’다. 미친 인간이라는 말이다. 정신분열증, 과대망상증에 사회 부적응자, 살인자이고 살인교사자이며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선동꾼이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아첨꾼이면서 강간범이고 국기 문란범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죄를 지은 인간. 그런데도 천 년간 감옥에 쳐 넣어야 된다거나 즉각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속이 다 후련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가 신은 아니지만 인간도 아닌 신과 인간의 중간 지점에 있는 반신반인이기 때문일까.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두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이에대해 콜린 윌슨은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이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다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고 애석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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