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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당나귀 발타자르(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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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5.02.22  17: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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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보다 해몽이 좋은 경우가 있다. 별 볼일 없는 작품이라도 이런 저런 해석이 붙다보면 대단한 작품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당나귀 발타자르>(Au hasard Balthazar)는 한 번 보면 무언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두 어 번 보고 나서 먼저 본 사람들의 아무렇게나 말한 것들을 뒤적이다 보면 오~ 호! 그렇게 깊은 뜻이? 하고 놓쳐 버린 장면에 대한 새로운 분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역시 꿈은 개꿈이라도 해몽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은 꿈도 좋고 해몽도 좋아야 한다는 것. 꿈이 좋으면 그 어떤 악평이라고 거뜬히 이겨낼 수 있고 세월이 흐르면 개꿈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혹 그런 사람이 나타나도 주목을 받지 못한다.

브레송 감독은 사람이 아닌 당나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의 원초적 본성에 대한 크고 깊고 장엄한 무언가를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그것이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말씀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위대하고 거룩한 것일 수도 있다.

선과 악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고뇌와 슬픔과 억압과 구원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그것에' 관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못 찾아도 할 수 없지만.

모든 새끼들이 그렀듯이 당나귀도 새끼는 귀엽다. 어미의 다리 사이로 그 앙증맞은 대가리를 처박고 젖을 빨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사랑이다.

그 사랑을 시샘하는 인간들이 지나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귀여운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나귀 새끼는 팔려간다. 넓은 들판에는 풀이 지천에 널려 있고 고풍스런 주택은 서로 붙어 있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있다.

목가적이고 전원적이면서 평화와 고요의 상징인 이곳에서 덤불을 뒤집어쓰고 아이들과 당나귀가 한 몸이다. 당나귀 발타자르는 행복하다. 먹고 자고 놀다보니 자신이 인간인지 당나귀인지 착각에 빠질 정도다.

그러나 당나귀는 당나귀일 뿐이다. 자신이 왜 인간이 아닌 당나귀로 태어났는지 고민할 새도 없이 몸집은 불어나고 더 이상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쓸모가 없다.

어깨에 근육이 붙고 다리 힘이 넘쳐 등에 짐을 실을 정도가 되자 발타자르는 고개를 들고 히히잉 울어대니 그 목소리 우렁차다.

일손이 필요한 농부는 이런 놈이 필요하다. 뚫린 코에는 쇠사슬이 지나고 발바닥에는 편자가 박힌다. 예쁜 마리( 안느 비아젬스키)와 자크 (월터 그린)는 의자에 하트 모양을 그리면서 사랑의 감정을 키운다.

그러나 마리는 아직은 자크 보다는 당나귀가 사랑스럽다. 애마를 다루듯 애무하고 꽃으로 머리장식을 해주고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는다. 자크는 그런 당나귀가 못마땅하다.

발로 찬다. 주먹으로 갈긴다. 발타자르는 운다. 새끼였을 때 내뱉었던 기괴한 소리 즉 닭소리 개소리 소소리 양소리 같은 소리, 혹은 이 모든 소리가 혼합된 소리 같은 소리로 울어대는데 그 소리에 맞춰 피아노 선율이 끼어든다.

모든 폭행은 불행을 가져온다. 발타자르가 얻어 터지면서 영화는 목가적 풍경의 한가함이나 여유와는 점점 멀어져 간다. 말리와 자크의 사랑도 티격대격한다.

자크는 친구인 제라르( 프앙수아 라파르시) 등과 자전거보다는 크고 오토바이보다는 작은 것을 타고 다니면서 좋은 짓 보다는 나쁜 짓을 많이 한다. 발타자르는 농부의 집을 나와 꼬리에 신문지를 말아 불을 붙이는 고약한 제빵업자에게 팔려간다.

늙은 나귀는 쓰러져 있다. 며칠째 일어나지 못한다. 자크는 망치를 든다.
“불쌍한 것. 금방 갈 거야”.

한데 누군가 나타나 자크의 망치는 막는다.

“멈춰라. 내가 데려간다. 길에 나가면 나을 거야”

하지만 술주정이 아놀드는 나귀를 키울 수 없다.

이번에는 호랑이와 곰과 원숭이가 철창에 갇혀 있는 서커스단으로 팔려간다. 금세기 최고의 두뇌를 가긴 당나귀답게 발타자르는 사람도 하기 힘든 곱셈을 척척해 낸다.

하지만 이곳도 그가 머무를 곳이 못된다. 마리는 자크에게 구원을 요청하지만 자크는 그럴 생각이 없다. 마리와 어디든 함께 가고 싶지 않다. 다른 여자와 춤을 추는 자크.

한편 발타자르의 주인이 죽자 경찰은 상속자가 없다면 우리가 처분해야 한다면서 시장에 내다판다. 돈은 많지만 성질이 고약한 늙은이는 발타자르를 학대한다. 물레방아를 돌리는데 채찍질을 하고 살이 벗겨졌는데도 치료하지 않고 내다 버릴 궁리만 한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마리는 돈은 많지만 구두쇠인 늙은이가 사는 추악한 집으로 찾아오고 자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늙은이와 하룻밤을 보낸 마리는 떠나고 다음날 부모가 늙은이를 찾아온다.

늙은이는 발타자르를 데려가라고 선심쓴다. 집에 오자 마리가 돌아와 있다. 마크도 돌아와 마리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청혼한다. 어릴적 의자에 새겨놓은 두 사람의 이름을 본다.

마리의 아버지는 죽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마리도 영원히 떠났다. 발타자르도 죽는다. 새끼였을 때 뛰어 놀았던 평원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다. 당나귀는 죽음으로써 비로소 인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이다. 주인공인 당나귀가 죽었으니 영화는 여기서 끝.

앞서 말한 먼저 본 사람들은 브레송 감독의 <당나귀 발타자르>에 대략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이 아닌 당나귀를 통해 인생과 인간의 조건을 탐구해 내는 매우 귀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나귀의 기쁨과 슬픔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려내면서 위험한 세상과 혼란스럽고 변덕이 심한 사랑과 동정, 순수 그리고 질투, 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괴로운 삶을 그려내고 있다고. 당나귀 발타자르 만큼이나 귀여운 마리는 마초적인 잔혹한 남성들의 희생양으로 묘사됐다고 한다.

팁: 이 영화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국가: 프랑스, 스웨덴

감독: 로베르 브레송

출연: 안느 비아젬스키, 월터 그린, 르랑수아 라파르지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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