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0 06:03 (토)
152. 귀로( 1967)
상태바
152. 귀로( 1967)
  • 의약뉴스
  • 승인 2014.10.02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침대에 한 남자가 누워있다. 자는 것 같지만 아니다. 온 신경은 삐걱 거리는 계단을 오르는 아내의 발자국 소리에 모아진다.

이윽고 아내는 약사발을 내려놓고 남편은 그 제서야 깨어난 듯 시늉을 한다. 이 짓을 무려 14년간 해왔다.

하반신 마비의 남편과 사지 멀쩡한 아내의 심리를 그린 이만희 감독의 ‘귀로’는 아내역의 문정숙이  남편 아닌 다른 남자에게 다리를 벌리느냐, 아니냐에 모아진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영화의 제목과 영화가 나온 1967년의 분위기를 파악해서 이미 결론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용을 알고 나서 보는 영화는 싱거울 수 있다. 하지만 이만희가 누구인가. 당대 최고의 감독이 어설픈 설정으로 재미없게 끌고 갈리는 만무하다. 과연 영화는 흥미롭다.

한국의 잭 니콜슨이라고 불러도 좋을 남편역의 김진규는 일간지에 소설을 연재하는 작가다. 아내는 거동이 불편한 남편 대신 원고를 서울의 신문사로 전달하기 위해 인천 집을 나선다.

경인선 3등 칸에 탄 아내는 다 앉아 있는데 홀로 서서 손잡이처럼 흔들린다. 역에서 내린 아내의 시선은 호기심 가득하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육교를 총총히 건너는 아내의 모습은 막 데이트 신청을 받아 약속장소로 나가는 달뜬 10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나 이제 준비 됐어요” 하고 말하는 듯하다.

신문사 책임자는 시대적 감각에 뒤떨어진 재미없는 소설을 탓하고 신입 사회부 기자(김정철)는 첫 눈에 부인에게 반한다. 두 사람은 어찌어찌해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남편은 드디어 아내의 변신을 눈치 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커다란 벌레로 변해버린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변신에 괴로워하고 마침내 여자의 지조가 아닌 부정으로 소설의 줄거리를 확 바꾼다.

여주인공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마치 자전소설을 그리는 것처럼.

시누이(전계현)는 올케를 이해한다며 오빠를 떠나라고 한다.

서울역 근처의 술집에는 선남선녀들의 거침없는 애정행각이 벌어지고 두 사람 역시 가슴을 맞대고 춤을 추는 게 자연스럽다. 시간은 자꾸 지나 자정으로 가고 경인선의 막차 소리가 시끄럽다.

가는 시간이 아까운 남자는 키스를 원하지만 두려운 여자는 손키스만 허락한다.

남편은 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내가 사랑하는 커다란 검은 개를 쏴 죽인다. 개처럼 죽을 수 있다는 경고를 아내에게 보내는데 영화는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는다.

남편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나쁜 짓 하다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6.25전쟁에 참전해서 얻은 병이다. 그러니 나의 성적 무능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예쁜 성당의 십자가가 간혹 보이는 것은 원초적 욕망을 신을 통해 눌러 보라는 암시 같다.

세찬비가 내리고 공중전화의 젊은 남자는 오라고 소리치고 불안한 아내는 나가는 척 하다 주저앉는다. 루즈를 꺼내 아랫입술을 바르고 윗입술을 짙게 바르고 눈썹을 그리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흠뻑 젖은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코트 깃을 바짝 세우고 주머니 깊숙이 손을 찔러 넣는 일 뿐이다,.

불타는 성적 욕망을 억누르면서 아내는 14년간 견뎌왔던 그 짓을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할 것이고 발길을 돌리는 관객들은 후련한 마음보다는 오래 묵은 체증처럼 답답한 안도감을 느낀다.

남의 남자에게 동정도 구원도 얻지 못한 여자의 일생은 안타깝다.

개가 죽고 난 후 영화는 긴박감보다는 느슨하게 흐른다. 문정희의 세련된 옷차림, 단정한 헤어스타일, 칼로 깎은 듯한 외모가 볼만하다. 다만 카메라를 의식하는 연기력은 김정철 만큼이나 어색하다.

국가: 한국
감독: 이만희
출연: 문정숙, 김진규
평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