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5 14:57 (목)
118. 밀회(1945)
상태바
118. 밀회(1945)
  • 의약뉴스
  • 승인 2014.01.13 16: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정이 있는 두 남녀가 바람을 핀다. 아쉬운 데이트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여자는 남자가 타고 떠난 기차가 어둠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든다. 그리고 이렇게 속으로 생각한다.

“집에 도착해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겠지. 그리고 어느 멋진 여자와 식사를 하고 영화를 봤다고 말할까. 안할 꺼다.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생각을 한 여자는 처음으로 두려움에 몸을 떤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원제: Blief Enconter)의 여주인공 로라 제슨(셀리아 존슨)은 의사 유부남 알렉 하비( 트래버 하워드)와 기차역에서 운명처럼 만난다. 로라의 눈에 들어간 석탄가루를 알렉이 빼주면서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한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서로 반대 방향에 집이 있는 로라와 알렉은 매주 목요일 날 밀회를 즐긴다. 로라는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모르는 남자와 식사를 했다. 의사인데 괜찮은 남자다. 언젠가 저녁에 초대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낱말 맞추기에 정신이 팔린 남편은 별 대꾸가 없다.

로라는 웃는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면서 크게 부풀려 생각했다고 안도한다. 그리고 약속장소로 간다. 그러나 남자는 없다. 마음이 아픈 로라. 그 때 남자가 저 멀리서 달려온다.

급한 수술 때문이었다고. 알릴 방법이 없었다고. 하~ 이 정도 핑계라면 어떤 여자가 조금 늦은 것 가지고 따지겠는가. 따지기는커녕 남자의 투철한 직업정신, 자기 일에 대한 열정과 야망에 녹아들게 된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속도는 빠르게 진척되기 마련이다.

처음 만나 팔짱을 낀 두 남녀는 이제 영화를 보고 식물원에 가는 것이 배우자처럼 자연스럽다. 애가 차에 치인 것도 다 자기 잘못 때문이었다고 자책했던 로라는 해방감으로 들뜨고 마음은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물에 빠졌던 알렉의 양말을 말리면서 로라는 알렉의 사랑고백을 듣는다. 아니라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말은 하지만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마음 가는 곳에 몸이 따라가는 것은 자석에 철이 붙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알렉은 말한다. “지난 목요일부터 당신에게는 긴 시간이 이었고 다신 날 만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 했겠지만 나왔다. 사랑한다. 당신의 그 큰 눈과 미소 짓는 모습과 수줍어하고 내 농담에 웃는 모습. 당신도 날 사랑한다. 안 그런 척 해도 소용없다.”

 

로라는 울듯 말 듯한 표정을 짓다가 그의 무릎사이에 고개를 묻고 어깨를 들썩인다. 이 장면에서 상황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키스를 한다. 그 때 행인이 지나가고 바닥에 떨어진 신문지가 바람에 날린다. (신문지처럼 두 사람의 바람도 바람처럼 사라질까.)

집에 돌아온 로라는 이제 걱정이 없다. 간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기차의 맨 앞 칸에 타서 집에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좌석에 앉아 아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지 않았고 책을 보는 척 하지도 않았다.

서로 사랑을 확인한 마당에 작은 거짓말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 죽었으면 하고 바랐던 수다쟁이 친구에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부탁하고 멋지게 남편을 속이고도 죄책감이 없다.

대신 알렉이 자신을 품는 것을 상상했다. 파리에서 오페라 특등석에 앉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베니스든 어디든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을 가는 꿈을 꿨다. 뱃전에 기대 바다와 별을 바라보기도 했고 야자나무 아래서 달빛에 비치는 해변을 걷기도 했다.

알렉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남편에 대한 원망도 생겨났다. 한 집에 살면서 나의 변화를 당신이 모르는 게 이상했다. 난 깨어 있는데 남편은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또다시 목요일에 만난 두 사람은 멋진 호텔에서 샴페인을 먹고 세상이 끝장나도 좋을 만큼 행복하다. 그러나 그 행복 오래갈까. 수다쟁이 친구와 딱 마주친다. 이제 물은 엎질러졌다.  그렇다고 예정된 계획을 물릴 수는 없다.

친구에게 빌린 차를 타고 알렉은 아치형 다리가 멋진 교외로 로라를 데리고 간다. 다리위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로라를 안아주는 알렉. 그러나 로라가 떠는 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라 떠벌이 친구가 퍼트릴 소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 로라를 알렉은 친구 아파트로 데려 가려고 안달이다. 로라는 제의를 거절하고 기차역으로 온다. 하지만 몸은 어느 새 아파트 초인종을 누른다. 겹쳐진 두 사람.  이제 넘어야할 선을 넘는 일만 남았는데 늦게 온다던 친구가 초인종을 누르고 로라는 도둑처럼 뒷문으로 도망친다.

그 기분 느껴보지 않아도 비참할 거다. 자존심이 상하고 죽고 싶을 만큼 창피하다. 비를 맞으며 늦은 밤까지 헤맨 로라는 기차역의 간이 휴게실에 있다.

얼마 후 알렉이 들어선다. 마지막이라는 걸 두 사람은 직감적으로 안다. 잠깐 동안 알렉은 왼손을 로라의 오른쪽 어깨위에 올려놓고 밖으로 나가면서 첫 장면과 이어진다. 기차역과 간이 휴게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남녀의 말 그대로 '짧은 만남'은 이렇게 끝난다.

로라의 독백은 행복과 욕망과 양심사이에서 갈등을 빚는 이 땅의 모든 불륜녀들이 겪는 탁월한 심리고백이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위대한 유산(1946) 올리버 트위스트(1948) 콰이강의 다리( 1957)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 닥터 지바고 (1965) 라이언의 딸(1970) 인도로 가는 길( 1984) 등의 숱한 걸작을 만들어 ‘밀회’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님을 확실히 보여줬다.

국가: 영국
감독: 데이비드 린
출연: 셀리아 존스, 트레버 하워드
평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