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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월하의 공동묘지(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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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월하의 공동묘지(1967)
  • 의약뉴스
  • 승인 2013.08.0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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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기도 하고 여자의 마음속에도 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듯이 여자의 내면은 질투와 집착 광기 등이 가득하다.

권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원제:月下의 共同墓地)를 보면 이 말이 실감난다. 귀신이 나타나기에 딱 좋은 교교한 달빛 아래 공동묘지는 생각만 해도 오싹하고 소름이 끼친다.

묘지가 반쪽으로 갈라지고 흰 소복을 입은 여자가 올라오는 장면까지 더해지면 피서가 따로 없다. 손가락 사이로 화면을 응시하기만 하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몸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린다.

어떤 한을 품었기에 영원히 잠들지 못하고 저승을 떠나 이승을 헤맬까.

명선(강미애)은 꿈 많은 여고생이었으나 오빠 춘식(황해)과 애인 한수(박노식)가 학생운동을 하다 일본 순사에 잡혀가자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된다. 먹고 살기가 여간 팍팍하지 않을 것이고 두 사람의 옥바라지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명선이 손쉽게 택할 수 있는 길은 기생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월향’이라는 이름을 받은 명선은 뭇 사내들 앞에서 열심히 춤과 노래로 기생 질을 하고 감옥에 갇힌 오빠는 자신이 죄를 다 뒤집어쓰고 한수를 내보낸다.

한수는 월향과 결혼하고 금광으로 돈을 벌어 아들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한다. 한편 거듭된 탈옥의 실패로 춘식은 무기수로 전락하고 걱정스런 월향은 몸이 쇠약해 진다. 찬모 난주( 도금봉)가 활약할 기회가 온 것이다.

난주는 월향에게 가짜의사( 허장강)가 조제해준 약을 먹이고 월향의 건강은 더욱 나빠진다. 난주는 월향의 목숨만 노리는 것이 아니다.

아들까지 독살하려고 엄마( 정애란)를 시켜 독극물이 든 병을 넘긴다. 적극가담하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말리지 않고 독약을 갓난아기에 먹이는 늙은 여자의 살기가 전율을 일으킨다.

거듭된 독살시도에도 아들은 엄마 월향의 혼령 때문에 살아나고 난주의 짜증은 더해만 간다. 어느 날 한수는 잔뜩 취해 집에 들어오는데 안방에 난주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자고 있다.

한순간 욕정에 눈이 먼 한수는 육중한 몸으로 난주를 덮치고 난주는 못이기는 척 하면서 그를 받아들인다.

계획대로 안방마님이 된 것이다. 이때 탈옥에 성공한 춘식은 한수가 다른 여자와 한 이불에 있는 것을 보고 경악한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 뒤를 쫒는 일경의 호각소리가 들리고 한수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매제에게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도망간다.

석회가루를 넣은 참조개국을 먹는 월향의 병세는 더 깊어지고 난주의 계교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월향의 방에 행랑아범을 시켜 외간남자를 끌어 들이는 모략을 세운다.

월향의 방문 앞에서 어떤 남자가 달아나는 것을 본 한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월향을 복날 개 패듯이 패고 분에 못이긴 월향은 원통하고 억울한 심정을 담은 유서를 남긴 채 단도로 자결을 한다.

뒤늦게 첩의 간교 때문인 것을 눈치 채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월향이 죽자 난주는 더욱 기가 살아 이번에는 한수까지 죽일 생각으로 그가 독립 운동가들과 내통하고 있다고 밀고한다. 체포된 한수는 물레방아 같은 틀에 묶여 심한 고문을 당한다.

 

한편 난주 모친은 미친 여자가 되고 우물 속에 빠져 죽는다. 난주는 돈 때문에 가짜의사와 사이가 틀어져 서로 죽고 죽이는 참극을 벌인다. 염산을 맞은 난주의 피범벅 얼굴이 끔찍하다. 월향의 원혼이 복수의 벼린 칼을 날린 것이다.

한수는 꽃다발을 들고 월향이 묻힌 공동묘지를 찾고 비목(나무비석)을 세우고 잔디를 다듬는다. 잘못을 참회하면서 아들을 잘 키울 것을 다짐하니 월향의 혼은 승천한다.

조금 뚱뚱하면서도 육감적인 난주가 큰 눈을 번뜩이며 살인교사를 지시하거나 가짜의사를 만나 살인을 작당하고 행랑아범을 시켜 월향의 방에 외간남자를 침투시키는 장면들은 50년이 흐른 지금 다시 봐도 잘 만든 한옥 문짝처럼 짜임새가 있다.

휘파람을 부는 듯 한 기괴한 소리, 흰 소복을 입고 입에 피를 물고 있다가 내뱉거나 도망자의 앞으로 날아와서 턱 가로 막고 고양이가 해골로 바뀌는 장면들은 한국적 귀신영화의 원조, 한국 호러의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악마 난주 역을 한 도금봉의 연기는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월향의 한에 사무친 처절한 복수극과 난주의 질투가 벌이는 불꽃 튀는 대결이 볼만하다.

‘굿거리 장단’ 에 맞춰 부르는 ‘성주풀이’는 애간장을 녹이고도 충분해 관객들은 놀란 가슴을 쓸다가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다.

‘...높고 낮은 저 무덤들,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이 될 터인데,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사족:  김영임이나 김세레나가 부르는 ‘성주풀이’를 따로 들어보는 것도 영화의 여운을 즐기는데 도움이 된다. 가야금 소리는 월향이 뜯는 것이고 장구소리는 해골에 붙은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소리로 들린다면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이다 .)

국가: 한국

감독: 권철휘

출연: 강미애 도금봉 박노식 황해 정애란 허장강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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